성검전설 3 리메이크?!


성검전설 3 소식을 듣고 정말 오랜만에 하는 이글루 포스팅. 

개인적으로 리메이크 작품에 좀 심드렁해진 상태입니다만 그래도 인생에서 가장 많이 파고든 작품 중 하나인 성검전설 3의 뜬금 리메이크 소식이 들려서 써봅니다. 티저를 보니 그래픽은 저만하면 잘 뽑힌 것 같고 시스템도 많이 바뀌어서 성검전설 3의 틀을 가져다 쓴 새로운 게임이 될 것 같은데 그래도 그 틀적인 부분에서 개인적으로 원하는 점이 하나 있다면 바로 밸런스...는 성검전설3 리메이크에 바라는 점을 빙자한 성검전설3의 밸런스를 까는 글 ㅋ

성검전설 3는 난이도가 꽤 널널하게 설계되어 있어서 모든 캐릭터의 대부분의 클래스들은 잘만 활용하면 충분히 1인분의 몫을 할 수 있는 게임입니다. 문제는 혼자서 2인분, 3인분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적폐 캐릭터들과 여타 캐릭터가 1인분을 못 하게 하는 블랙마켓의 존재.


얘네랑 



이 새끼..



일단 케빈은 다들 아시다시피 그냥 딜이 미쳤어요. 2타 공격인 주제에 밤만 되면 수화+파워업으로 공격력이 2단으로 뻥튀기 됩니다. 

알기 쉽게 숫자로 보여드리면 성검전설 3의 일반 공격의 데미지 공식은 심플하게 공격력 - 방어력 인데 케빈의 최강 클래스 데스핸드의 공격력은 수화했을때 351, 데미지를 받아 파워업하면 468인데 잡몹 중 제일 튼튼한 쁘띠도라좀비의 방어력은 213. 즉, 1타에 255가 나오고 2타 공격이 전부 명중하면 510이 나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쁘띠도라좀비의 최대HP는 913이니 결국 케빈의 공격 두 번이면 모든 잡몹을 녹여버릴 수 있다는 결론.. 

물론 아군 동료의 공격과 파워업이 걸리는 타이밍에 따라 조금 달라지지만 대충 그렇습니다. 참고로 데스핸드가 딜이 제일 잘 나오는 건 맞지만 데스핸드가 아니라도 힘을 찍어주고 무기만 잘 맞춰주면 케빈은 어떤 직업에서나 이런 느낌..



반면 샤를로트는 유틸성이 미쳤습니다. 초반부터 회복 마법을 쓰기 시작해서 1차 전직을 하면 전체 회복, 2차 전직을 하면 블랙커스라는 궁극 디버프 마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전직 아이템을 사용하면 비숍 외에 모든 직업이 사용 가능) 

거기에 빛 계열로 전직하면 세이버 마법과 빛 속성 공격 마법이 덤으로 따라오고 어둠 계열 이빌 샤먼으로 전직하면 데몬 브레스로 안젤라와 후반 한 방 조합을 짜는 것도 가능. 비숍으로 전직하면 동렙 이하의 언데드(최종보스 다크리치 포함)에게 999의 데미지를 MP1로 선사하는 턴 언데드가 있습니다. 

심지어 지성이 안젤라와 비교해도 1~2 밖에 떨어지지 않기에 코인을 들고 다니면 안젤라를 대신해 마법사 역할까지 해버림ㅋㅋㅋ


밸런스 좀 맞춰 미친놈들아




다음으로 이 놈을 욕하기 전에 짚고 넘어갈 부분은 성검전설3의 거의 대부분의 마법과 스킬은 아이템으로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결국 캐릭터의 마법과 스킬의 가치는 그 마법이나 스킬을 아이템으로 대체하기가 얼마나 어렵냐에 달려있습니다. 

예를 들어 호크아이의 직업 원더러가 사용하는 카운터 매직은 마탕고의 기름이란 아이템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데 이 마탕고의 기름은 상점에서 팔지 않는 아이템이긴 하지만 카운터 매직이 극후반에나 배우는 마법이고 극후반이면 보스전도 몇 번 남지 않은 상태라 적은 갯수로도 대체가 가능합니다. 

반대로 오라 웨이브와 같은 기능을 하는 그렐의 기름은 마탕고의 기름과 마찬가지로 비매품인데다가 오라 웨이브가 보스전보다 필드전에서 주로 사용하는 마법이라 당연히 이를 대체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수량도 그만큼 많다는 겁니다. 그 수량을 모으려고 노가다를 하느니 그냥 진행을 하는게 이득입니다.

결국 보스전 스킬보다 필드전 스킬이 더 가치가 높은 편이라는 것과도 일맥상통하기는 한데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니라 대체하기 쉬운 카운터 매직보다 대체하기 어려운 오라 웨이브가 전략적으로 더 가치 있는 스킬이란 겁니다. (물론 호크아이의 직업 원더러는 카운터 매직이나 오라 웨이브를 모두 배우지만 알기 쉽게 비교하면 그렇다는 것)



그런데 이 녀석은 듀란의 세이버 마법, 안젤라의 4대 속성 마법, 리스의 버프 마법을 돈만 주면 파는 사기꾼입니다. 혼자서 셋을 엿 먹이는 위엄 ㅋㅋ 물론 전직하기에 따라 손해를 보지 않는 직업도 있지만 그건 반대로 말하면 손해를 보는 직업이 있다는 말. 

성검전설 3에서의 묘미는 파티의 다양한 직업 조합에 있고 그 중 좋은 직업 조합이라 함은 후반 만이 아닌 초반, 중반, 후반 두루두루 높은 효용이 높은 조합인데 블랫마켓의 아이템들은 분명 굉장히 유용하지만 그 유용함으로 인해 캐릭터 간의 효용의 편차를 키우는 밸런스 파괴의 주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플레이어가 이를 제한하고 플레이해도 되겠지만 이런 식의 시스템을 100% 활용하지 못하는 제약 플레이는 결국 게임 자체의 재미를 떨어트리기 십상이라 지양하는 편이 좋지요. 리메이크에서 바라는 것은 밸런스를 파괴하는 특정 캐릭터의 오버파워나 캐릭터의 장점을 죽이는 블랙마켓 같은 요소가 없었으면 하는 겁니다.

ps...리메이크 나오기 전에 2인 파티로 최약 파티를 구성해서 해봐도 재밌을 것 같은 느낌

by 일반인 | 2019/06/14 13:40 | 트랙백 | 덧글(4)

마마마 신편 반역의 이야기 - 꿈꾸는 것은 누구인가


정말 오랜만에 하는 포스팅이네요. 바쁘다는 핑계로 손을 놓으니 포스팅 자체가 더 귀찮아지고 귀찮다고 생각을 하니 더 포스팅을 안 하고 계속 포스팅을 안 하다보니 이글루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는 악순환;;; 오랜만에 갑작스런 변덕으로 이글루에 접속했으니 글이나 하나 올려놓고 갈까 합니다. 예전에 적당히 써놨던 글을 그대로(...) 가져온 거라 조악하고 뒷북치는 글이지만 제 이글루의 글은 다 그러니 관대하게 넘어가주시길..


거울에 비춘 듯 닮은 두 개의 이야기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신편 반역의 이야기는 찝찝하게 끝이 났던 TV판의 후일담이자 속편의 포지션이다. 사실 나는 이런 후일담 또는 속편을 좋아하지 않는다. 박수칠 때 떠나라고 했듯 이야기가 끝이나고 스탭롤이 올라간 뒤에도 계속되는 이야기는 작품의 완결성과 완성도를 떨어트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존재한다. 반역의 이야기는 TV판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예정된 결말, 약속된 파국을 뒤집어 새로운 이야기 구도를 만들어냈다. 반복과 반전을 통해 기존 이야기와의 대비와 차별화를 성공한 것으로 마마마 TV판과 극장판은 마치 거울을 비춘듯 닮았으면서도 다른 존재로 확립된 것이다.

마도카가 잠에서 깨며 시작되는 이야기. 마녀 또는 악몽과 싸우는 과정에서 알게 되는 충격적 진실. 그리고 그 가혹한 현실에 맞서 질서 또는 욕망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소녀와 그로 인해 변혁되는 세계. 거울을 비춘듯 닮은 두 개의 이야기지만 그 대비를 통해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결말. 보는 사람의 마음을 헤집어놓는 해피엔딩 같은 베드엔딩, 베드엔딩 같은 헤피엔딩이 그것이 아닐까 싶다. 


우로부치 식 해피 엔딩

우로부치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가혹한 세계와 그에 맞서는 개인의 구도를 자주 사용하는 작가이며 그런 이야기의 결말로 사랑을 통한 극복 또한 자주 사용한다. 흔히 말하는 사랑의 승리 라는 것이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우로부치가 만드는 작품은 일반적으로 물이라기엔 너무 진하며 약이라기엔 너무 강하다. 뭐, 결국 독이란 이야기다.

실제 우로부치가 그려내는 사랑은 흔히 미디어에서 표현되어지는 아름답고 밝고 순수한 것이 아니다. 세계를 왜곡하는 질척하며 어두운 진흙 - 저주에 가까운 개념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을 통해 개인은 세계에 대한 승리를 쟁취한다. 이것은 우로부치의 작품 [귀곡가]와 [사야의 노래] 등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 개념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이야기 속에서의 개인의 승리는 세계의 패배를 뜻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승리를 하는 개인은 딱히 올바르지 않으며 패배를 하는 세계 역시 딱히 올바르지 않기에 독자는 이것을 개인의 승리 = 해피엔딩으로 봐야할지 세계의 패배 = 배드엔딩으로 봐야할지 피카레스크스러운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우로부치식 비뚤어진 해피엔딩은 그의 작품 중 사야의 노래에서 절정에 다달았었다. 그리고 이번 반역의 이야기 역시 사야의 노래와 같이 우로부치식 해피 엔딩의 향기를 강하게 풍기는 작품이다. 하지만 한 가지 사야의 노래와 마마마가 다른 점을 찾는다면 무엇보다 마마마의 등장인물들이 모두 어린 소녀들이라는 점이다. 


홀로 춤추는 소녀

과거 마마마 TV판 감상에서 마마마는 마치 용자물이 그러하듯 개인의 희생과 그를 통한 구제를 그려냈지만 그 희생의 주체가 한 명의 어린 소녀라는 아이러니로 시청자들로 하여금 형언할 수 없는 씁쓸함을 안겨준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번 반역의 이야기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한 명의 소녀가 스스로를 희생하는 이야기다.

반역의 이야기 오프닝 곡이 나오는 장면과 에필로그를 살펴보면 눈에 뛰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춤을 추는 마법소녀들이다. 자세히 말하면 오프닝에서 홀로 춤추지 않는 호무라와 에필로그에서 홀로 춤추는 호무라를 볼 수 있다. 모두가 춤출때 홀로 춤을 추지 않고 아무도 없는 언덕에서 홀로 춤을 추는 소녀의 이야기. 그것은 바로 이 반역의 이야기를 상징하는 것이다.

누가 꿈꾸고 있는가 란 마녀 문자로 작성된 문구는 작중 두 번에 걸쳐 나타난다. 그 질문의 대한 첫번째 답은 바로 가짜 미타키하라를 만든 호무라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물은 꿈꿨던 것은 누구인가 란 질문에 대한 답은 호무라를 제외한 모두이다. 가족의 품에서 행복해하고 있는 마도카, 인간으로서의 삶을 되찾은 사야카, 친구를 잃지 않은 쿄코, 혼자가 아니게 된 마미. 결국 모두가 꿈꿨던 세계였다.

다만 그 안에 호무라가 원하던 마도카의 행복은 있었으나 호무라 자신의 행복은 없었다. 사랑하는 이를 지켜냈다는 행복감, 만족감,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지언정 스스로가 행복해지는 결과는 얻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을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자기 자신만이 빠진 공허한 행복이란 것 역시 사실이다. 또한 선의였건 악의였건, 선해이었건 악행이었건, 그것이 마도카가 마법소녀들을 구하기 위해 그러했듯 그것이 호무라의 희생이라는 것만은 부정할 수가 없을 것이다.


사랑만이 남겨진 세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는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모든 악을 담은 상자를 열어버리고만 여인. 그녀가 황급히 닫은 상자 안에는 희망만이 남겨져 인간은 희망을 간직한 채 살아갈 수 있다는 좋은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반역의 이야기에 나오는 가짜 거리의 아이들 - 클라라 돌즈를 보면서도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거만, 어두운 성격, 거짓말쟁이, 냉혈, 고집, 욕설, 아둔함, 질투, 게으름, 허영, 겁쟁이, 어리석음, 일그러짐, 완고함의 열네명의 아이들이 모두 풀려났음에도 마지막 아이 = 사랑만은 나타나지 않은 것은 판도라의 상자에 희망만이 남겨져 인간이 희망만을 품고 살아가듯 클라라 돌즈 중 사랑만이 풀려나지 않은 것은 호무라가 사랑만은 계속해서 품고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우로부치식 해피 엔딩의 사악한 점은 바로 이러한 점이다. 만화니 소설이니 하는 것을 보면 사랑이란 이름 아래 미화하고 합리화해온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사랑은 아름답다는등 사랑은 위대하다는등 하는 그런 이야기는 참으로 많다. 그리고 호무라의 그것 역시 비뚤어졌을지언정 분명한 사랑이다. 소중한 존재를 위해 자신마저 희생하는 호무라의 사랑을 그저 지켜보는 우리가 어찌 쉽게 부정할 수 있을까.

결국 호무라는 호무라는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기계장치의 인형과 같은 인물이다. 또한 보답받지 못하는 가혹한 운명에 춤추는 작품내 아이러니를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거기에 타성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외골수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가장 잘 상징하는 인물상은 결국 그녀가 사랑을 하는 소녀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반역의 이야기의 뒷맛을 찝찝하게 만드는 이유다.


낙원을 잃어버린 인간

호두까기 인형의 춤은 결국 클라라가 꿈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끝이 난다. 마찬가지로 끝나지 않는 꿈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역의 이야기에서 낙원의 붕괴는 두번에 걸쳐 나타난다. 첫번째는 실낙원의 전형적인 패턴, 인간 자신의 욕망과 호기심에 의한 것이다. 호무라는 스스로 거짓 낙원에 진실을 파해치기 시작해 낙원이 낙원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고 만다. 진실이란 열매에 손을 댄 호무라는 그 죄로 낙원에서 추방된다.

그 후 호무라는 타락하여 스스로 인공의 낙원, 모형정원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너무나 인간적인 흐름이며 행동이다. 하지만 그곳은 닫힌 세계이고 정체된 세계는 부패하기 마련이며 인간은 필연적으로 부의 감정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를 위한 큐베이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저주를 처리하기 위한 정화장치로써 큐베는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낙원은 영원할 수 없으며 영원한 건 낙원일 수 없다. 무한에 가까운 개체수를 자랑하던 큐베조차도 쇠락할 것이며 호무라의 정신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에필로그에서 반쪽이 잘려나간 세계를 보면 반쪽으로 잘려나간 언덕에서 호무라는 마치 어딘가에 기대듯이 몸을 기울이고 있다. 그것은 사라진 마도카가 있을 언덕, 마도카가 있을 의자, 마도카가 있을 자리가 아닐까? 

호무라가 세계의 반쪽 = 마도카를 위한 세계조차 잃어버리게 되리는 것은 예정된 결말이다. TV판 이후의 호무라가 결국 절망하여 마녀가 되는 것과 같이 시스템의 붕괴 역시 예정조화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 순간이 되어서조차 자신의 손 안의 마도카의 존재에 미소짓는 호무라의 모습은 행복해 보인다. 그렇기에 우로부치가 그려낸 해피 엔딩은 이야기 속의 당사자에게도 이야기를 보는 우리에게도 독일 수 밖에 없다.


바라보는 것은 누구인가

만악의 근원 큐베가 우로부치의 오너캐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중론이다. 그리고 큐베는 희망과 절망의 상전이 에너지를 회수하기 움직인다. 희망과 절망의 상전이라니? 어디선가 들어본 이야기가 아닌가? 우로부치가 쓴 페이트 제로에서 질드레는 진정한 공포를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순간이라고 말하며 그것을 깊이 음미하였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인간의 신선하고 실감나는 감정을 즐기는 것은 인간밖에 없다.

우주를 구한다고? 그런거 단순한 명분인게 뻔하지 않은가. 확실히 일본 애니메이션계는 구할 수 있겠다 엔트로피를 초월한 소원을 들어주는 큐베가 엔트로피를 극복하기 위해 이런 번거로운 짓을 할리가 있을까? 무엇보다 외계의 존재인 큐베가 우로부치라면 마마마의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 역시 외계의 존재지 않은가. 결국 큐베는 독자를 위해 만족시키기 위해 움직이는 우로부치다. 그리고 그 우로부치에 열광한 것 역시 우리들이다.  

우로부치는 한 인터뷰에서 창작물이란 독의 섭취원으로 효과적이라고 말하였다. 마마마의 악취미 같은 지독한 이야기.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거짓말처럼 성공을 하였다. 그것은 이런 것을 원한 것은, 이러한 것을 꿈꾼 것은 바로 우리들이었다는 반증이 아니었을까? 큐베-우로부치를 악마라고 욕하지만 사실 그것을 즐기는 것은 바로 우리 시청자들이었다. 큐베조차 우리의 충실한 사역마였을 뿐이다. 꿈꾸는 것은.. 꿈꾸던 것은 누구였을까?

ps..본 지도 쓴 지도 꽤 되어서 태클 거시면 좀 난감합니다ㅋ

by 일반인 | 2014/11/24 14:41 | 평범한 문화생활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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